김유태 - 나쁜 책
최근 처음으로 이북리더기를 구매했다. 종이책이 점점 비싸지기도 하고, 책을 구매해 읽기에는 점점 실망하는 책들도 많아져서. 동네 도서관에서 이북을 대출받아 읽을 수 있다고 하여 구매했는데, 조금 구리다는 것 제외하고는 방대한 책들을 읽을 수 있어 너무 좋다. 그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은 바로 김유태 기자의 <나쁜 책>이다. 전 세계에서 금서로 지정된 책들을 정리한, 매우 내 흥미를 끄는 주제인지라 단숨에 읽었다.
무엇보다도 기자가 쓴 책은, 아니다, 기자가 쓴 장문의 글은 처음 읽어보는데, 확실히 가독성이 좋다. 주제는 불편할 수 있을지언정 읽기에는 너무나 편안한 책이다.
책의 주된 내용은 사실 각 금서들의 줄거리와 배경이라 생략하고..
유달리 아름다운 문장이 많아 기억에 남는 서론인 안전한 책들의 칵테일파티 속 몇 문장들을 발췌해둬야겠다.
복잡한 의미와 뒤엉킨 문장으로 적힌 글들은 한때 한 세대를 주도하는 물성으로 존재하다가 어느덧 커튼 뒤로의 퇴장을 명 받았지만 보이지 않는 휘장 뒤의 묵언 속에서 빛으로 가득한 책은 분명히 있었다. 굳어버린 빵 조각 같은 종합자료실 책의 문장을 하나씩 발라내 음미하면 그것은 최고의 풍미를 자랑하곤 했다. 오래된 책을 정기적으로 펼쳐 읽는 행위는 생의 곁길로 빠지면서 즐기는 잠깐의 군것질이 아니라 정신의 식탁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즐기는 정찬의 의례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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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책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면 그것들은 대개 '안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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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불화할 가능성을 애초에 제로로 가정하고 집필된 책은 독자의 정신에 아무런 생채기도 내지 못한다. 모든 책이 독자를 할퀼 수야 없다. 그러나 그런 사태가 매양 반복되는 모습은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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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속적으로 읽히는 책들, 시간이 지나도 회자되는 책들의 문장 사이에 숨어 있는 칼날 같은 진실은 무섭도록 단순하다. 독자를 충격하지 못하면 그 책은 인쇄와 동시에 이미 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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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는 세상이 온통 뿌연 때에 뜻밖의 색조를 띠며 세상의 불온함을 고발하는 초월정 문장의 합이었다. 그 책들은 한 시대와 불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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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의 작가들은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와 독자에게 자유를 선물하고자 했다. 독자는 문장으로 적힌 지옥의 창문을 열어보면서 자유의 물결 속에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책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면면이 칵테일파티다. 절대 다수가 보기에 좋지 않으면 외면당하고, 완전하지 않으면 내보일 수 없다. 나는 칵테일파티에서 쪼리와 에코백을 착용할 정도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