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ies/Camino Francés

[산티아고 순례길] ⑧ 3/21 비야투에르타에서 산솔까지 32.2km

애니스토리 2025. 5. 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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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남들보다 적게 걸은 나는 오늘 30km 이상 걸어버렸다. 원래는 25.3km만 걸어 로스 아크로스까지만 가려 했지만 막상 마을에 도착하니 맘에 안들기도 하고 자연이 아름다워 산솔이라는 작은 마을까지 계속 걸었다. 
 
30km 이상을 처음 걸으니 드디어(?) 발에 물집이 생겼다. 발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에스테야의 귀여운 조가비.

 
 
오늘은 와인 수도꼭지가 있는 이라체를 지나간다. 와인을 담을 잔이 없으니 이전 마을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했는데, 정작 와인을 마셔보니 와인보다 커피가 더 맛있다. 난 아무래도 와인은 잘 모르겠다. 
 
같이 걷다 만난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물으니 어린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 맛이 진하지 않다고 한다. 진위는 알 수 없으나, 확실히 술보다는 주스에 가까운 가벼운 와인이었다. 이곳 쎄요가 예뻤는데, 제대로된 정보를 미리 하나도 찾지 않는 나는 모르고 지나갔다. 
 


 
 
여기가 벌써 메세타 평원인가 싶을 정도로 평지만 계속 걸었다. 윈도우 배경화면처럼 쨍한 초록색과 파란색으로 가득한 풍경 속에서 몇 시간을 걸으니 내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건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올라온다. 
 

한참을 걷다 만난 푸드트럭.

 
 
그렇게 같은 풍경만 계속 보다 마주한 푸드트럭은 만난 적도 없지만 정말 반가웠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오렌지 착즙주스를 먹고 비싸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들은 너무 맛있어서 순례길에서 꼭 먹어야하는 음료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맛을 봐도, 가격을 봐도 차라리 콜라가 더 좋다. 그저 당을 채우고 넘어가기에는 3유로, 때로는 4유로에 육박하는 주스를 매번 먹고싶진 않았다. 
 
이 푸드트럭은 놀랍게도 미국인 가족이 하는 가게다. 이들은 어쩌다가 순례길 한가운데 허허벌판에 푸드트럭을 운영하게 되었을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계속 와서 기회가 없었다. 다만 지레짐작은 할 수 있다. 이들도 순례길을 걷다가 '아, 이곳에 푸드트럭이 있으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면 모든 사람들이 목이 마를텐데.'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걷고 또 걸어 원래 목적지였던 로스 아크로스에 도착했다. 꽤 규모가 있는 마을이었는데, 시에스타여서 그런지 연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에휴 어쩔 수 없다 하고 마을 끝까지 걸어간 나는 갑자기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있는 광장의 바로 들어갔다. 오늘 먹은거라곤 아침에 먹은 라이스푸딩과 오렌지 주스뿐이라 처음으로 보카디요를 시켰는데 왠걸, 내 발보다 큰 빵에 바게트 샌드위치를 준다. 
 
그렇게 햇빛 아래서 한참을 쉬다가 7km만 더 가면 있는 산솔까지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로스 아크로스는 내 스타일이 아냐-하고 걸음을 시작했는데, 정말 지겹다. 난 왜 걷는걸까? 순례길의 의미와 뜻, 내가 답을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잡생각만 머리에 가득해질 무렵, 저 멀리 작은 성당이 보인다. 성당이 있다는 뜻은 마을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진다. 드디어 쉴 수 있어. 
 
산솔은 너무 작다못해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하면 이 마을의 모든 집을 셀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음식점도 없고 슈퍼도 안열었다. 나는 왜 이런 마을만 골라서 가는걸까? 오래되고 허름한 건물에 딱 하나의 알베르게만 열려있었는데, 나름 운치있는 것 같기도 해서 들어갔다.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왜 로스 아크로스에서 머물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했지만, 사냥꾼같이 생겼던 주인 아저씨가 정말 진심으로 아끼는 아지트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아껴주기로 결심한다. 
 
 

작은 마을 산솔.

 
 
워낙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해가 지면 몇 개의 가로등 제외하고는 깜깜해진다. 깜깜하다면 하늘을 올려다봐야지. 빛 하나 없는 저 아래 도로까지 어기적어기적 걸어 내려가 어둠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사진에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우주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수백개, 수천개, 수억개 이상의 별들이 나에게로 쏟아진다. 아, 이걸 보러 여기에 온거구나.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별하늘을 오랜만에 올려다보니 눈물이 울컥 나온다. 나는 정말 작고 작구나. 내가 염려하고 걱정하던 모든 일들은 다 정말 작은 일이었구나. 다 걸을 수 있다고, 다 해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잊을 수 없는 하늘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