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② 3/15 파리에서 생장피에드포르로
새벽부터 호텔을 나선다. 기차를 타야하는 몽파르나스 역 앞에 있는 호텔이었지만 플랫폼을 한 번에 찾을 자신이 없어 일찍 나왔다. 덕분에 기차 출발까지 한 시간이나 남아 하는 수 없이 커피와 빵을 찾아 두리번거려본다. 눈 앞에 보이는 스타벅스와 곤트란쉐리에는 우리집 도보 10분 거리 이내에도 있지만, 역사 반대쪽 끝까지 걸어간다한들 뭐 대단한게 있을까 싶은 마음에 그냥 들어간다. 이날 먹은 스타벅스 아이스 라떼는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왜 그 때의 나는 벤티 사이즈로 안 마셨을까? 먹을 수 있을 때 먹었어야만 했다.


바욘에서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 생장피에드포르에 무사히 도착을 해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여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순례길을 시작하는 순례자들이니 그냥 사람들 따라갔는데, 다들 레스토랑, 카페, 숙소 등으로 흩어져서 무작정 따라가다 보면 당황하게 된다. 만약을 위해 구글맵에 저장해둔 55번 알베르게, 순례자 사무실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시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길에 주요 장소들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들이 참 많았는데, 표지판만 똑바로 보고 걸었어도 잘 도착했을 것이다.

55번 알베르게 앞에 2등으로 백팩을 놔뒀다. 1등부터 한 8등까지는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누가 가져가든 남에게는 가치없을 물건들일게 뻔하기 때문에 순례길을 걷는 내내 백팩 도난은 걱정하지 않았다. 무거운 백팩 안에 돈되는 물건은 하나도 안 들어 있다는 건 이 구역에서 활동하는 도둑들도 잘 알고 있겠지.
마을 입구와 순례자 사무실을 지나 55번 알베르게까지 언덕이 있는데, 나는 오르막을 너무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최대한 오르막 윗쪽인 알베르게 근처에 머물렀다. 앞으로 어떤 오르막들이 나를 기다릴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많아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구매하고 첫 쎄요(스탬프)를 찍는데, 할아버지가 꼭 영상으로 남기라며 내 핸드폰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신다. 하루에 수십명에서 수백명이 오가는 곳인데, 이런 작은 따듯함이 감사하다. 1유로를 기부하고 고른 가리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을 띄고 있었다. 고민없이 단숨에 집어든 나는 아직도 알베르게 앞에 놓여져 있는 백팩에 가리비를 달러 오르막을 또 올랐다. 가리비를 다 달고 나니 고양이도 마음에 들었는지 내 백팩 앞에 자리를 잡는다. 이 고양이와 함께한 12시간은 순례길을 걷는 내내, 아니 지금까지도 내가 제일 그리워하고 있는 시간이다.

생장에 대해서 사무실과 알베르게 제외하고는 전혀 알아보고 오지 않은 관계로, 밥도 그냥 오르막 중간 정도에 있는 파스타집에서 먹었고 산책도 성당에 들어가보는 정도로만 했다. 내일 첫 발자국을 뗄 생각을 하니 오늘은 최대한 덜 걸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남은 반나절을 꼬박 고양이와 시간을 보냈다. 저 고양이가 먼저 내 침대를 찾아와 포근히 안겼다.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면 안된다고 해서 몇 번이고 쫓아냈지만 다시 들어오는데 방법이 없다, 그냥 실컷 놀아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