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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스토리
오늘은 많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새벽 일찍 나온다. 6시쯤 나왔다. 일출이 시작되기 전 까만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하는 새벽 하늘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거의 29km 가까이 걸어야하는데 내가 갈 수 있을까? 싶지만, 어제 라면을 먹었으니 걸을 수 있어야 한다. 비교적 완만한 길을 걷고 또 걷는데, 마을에 임박해서는 거의 다리를 질질 끌고 스틱에 몸을 의지해 걸었다. 순례길을 등산스틱 없이 걷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걷지? 자꾸 이상한 의문과 의심만 커진다. 비얌비스티야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동네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성당은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오늘도 다들 토산토스라는 동네까지만 가서 그런지, 한 마을 더 걸은 이 곳에는 아무도 없다. 알베르게도 나 혼자였다. 바와 같이 운영하는 ..
이름도 어려운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왔다. 더 갈까? 싶었지만 왠지 다리가 이상하다. 이상할 때에는 쉬어야한다, 나중에 큰일이 되기 전에 몸을 사린다. 비가 추적추적 와서 하루종일 어두운 날씨에 걸었다. 지난 며칠은 길이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어느 동네를 지나쳤고 어느 길을 걸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마을 이름이 어려워서 발음도 못하는데, 외우는건 더 어렵다. 이제 그냥 걷는다. 상념의 시간이 아닌 그냥 걷기의 시간이다, 그저 비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여름에 오면 와인밭의 포도를 서리해서 먹는다던데, 포도는 커녕 앙상한 나뭇가지밖에 안보여 아쉬울 뿐이다. 지금 돌아봐도 날씨와 알베르게 외에는 기억나는게 많이 없는걸 보니, 이 시기가 가장 재미없던 길이었던 것 같다. ..
오늘은 또 거의 30km 가까이 걷는 날이다. 어제 쉬었으니 괜찮겠지 싶었지만, 오히려 쉬어서 힘들다. 컨디션은 좋은데 너무 걷기 싫어졌다. 독이구나. 비가 꽤 많이 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비를 뒤집어 써본다. 머리도 젖고 얼굴도 젖고 손도, 스틱도, 발도, 다리도, 다 젖는다. 우비를 쓰면 뽀송뽀송하게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스틱을 들고 걸어야하니까 그저 우산을 쓸 손이 없어서 우비를 쓰는거였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가 오면 흙길이 진흙길로 변한다. 신발과 바지는 비로만 젖는게 아니라 흙으로도 뒤덮인다. 아 빨리 가서 씻고 싶은데, 오늘은 걸어야 할 길이 너무나 멀다. 예쁜 와인밭이 펼쳐진 길이라 들었는데, 눈에 자꾸 빗물이 들어가니 앞을 볼 수가 없다. 21세기..
처음으로 쉬는 날이다. 긴장하지 않고 이렇게 하루 종일 쉰 날은 유럽으로 날아온 이후에는 없다. 마침 주말이라 광장에서는 플리마켓도 하고 도시답게 사람도 많다. 제법 휴일다운 날이다. 비싸게 라멘도 먹고 장도 보고. 혹자는 왜 스페인에 가서 아시안 음식을 먹냐 묻지만 각 나라 사람들이 만드는 아시안 음식의 맛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먹어보고 싶다. 구글 평점은 별로였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오늘 처음 쉬어서 그런가, 발의 통증이 온전히 느껴진다. 발목도 아프고 발바닥도 아프고, 물집까지 있다. 그래도 내일 나헤라라는 마을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다. 마음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29km를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내 손은 어느새 나헤라의 숙소를 예약하고 있었다. 내일은 중국음식 먹어야지. 박물..
첫 오프데이를 향해 열심히 걷는다. 산솔 알베르게 아저씨가 잘 걸으라고 하며 순례자를 위한 스페인의 시와 노래를 왓츠앱으로 보내줬다. 허름한 알베르게라 잠시나마 온 걸 후회했던 내 자신이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힘든 어느날 듣게 되겠지? 당장은 그리 힘들지 않으니 잠시 아껴두기로 한다. Caminate, no hay camino, se hace camino al andar.나그네여 길은 없나니, 걸어감으로써 길이 만들어지네. 날이 너무 좋다. 길도 너무 좋다. 비슷비슷한 지루한 길이었지만, 한국의 둘레길 정도 난이도를 걷는 오늘은 큰 어려움없이 룰루랄라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로그로뇨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팜플로나보다 큰 도시였다. 공립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한숨 돌린 나는 여기저..
그간 남들보다 적게 걸은 나는 오늘 30km 이상 걸어버렸다. 원래는 25.3km만 걸어 로스 아크로스까지만 가려 했지만 막상 마을에 도착하니 맘에 안들기도 하고 자연이 아름다워 산솔이라는 작은 마을까지 계속 걸었다. 30km 이상을 처음 걸으니 드디어(?) 발에 물집이 생겼다. 발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오늘은 와인 수도꼭지가 있는 이라체를 지나간다. 와인을 담을 잔이 없으니 이전 마을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했는데, 정작 와인을 마셔보니 와인보다 커피가 더 맛있다. 난 아무래도 와인은 잘 모르겠다. 같이 걷다 만난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물으니 어린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 맛이 진하지 않다고 한다. 진위는 알 수 없으나, 확실히 술보다는 주스에 가까운 가벼운 와인이었다. 이곳 쎄요가 예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