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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 숨 본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다 읽자마자 시작한 <숨>은 테드 창의 또 다른 중·단편집이다. 작년에 출간된 나름 따끈따끈한 책. 이 책에 나오는 세계들 또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Sci-Fi인지 그 구분이 모호하다. 진짜 있을 법 한 이야기들이랄까? 테드 창이 모호함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대부분의 후기에서 '우아함'으로 표현되는 듯 하다. 너무 과학적이지도 않고 너무 일상적이지도 않고, 너무 현실적이지도 않고 너무 초현실적이지도 않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숨
우리가 해야 할 일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거대한 침묵
옴팔로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내가 미래의 나를 만난다는 것은 미래의 나 또한 과거에 미래의 또 다른 나를 만났다는 것. 여기서 '나'의 존재는 무한이며 시작도 끝도 없을 것이다. 세월의 문을 이용해 20년 뒤의 나를 만나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로 돌아와 무언가를 바꾸는건 불가능하다는, 결국 미래는 정해져있다는 내용. 어차피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20년 뒤의 나, 혹은 그 전으로 돌아가 과거의 나를 보는 '나'에 집중된 행동보다는 나의 모습을 다른 제 3자의 perspective로 보고 객관적인 눈을 가져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일 것 같다.
"'세월의 문'을 이용한다는 것은 결과를 모른 채 제비를 뽑는 행위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궁전의 비밀 통로를 이용하는 것을 닮았습니다.
정상적으로 복도를 거쳐 가는 것보다 더 빨리 목적하는 방에 도달할 수 있는 통로 말입니다.
어떤 통로를 이용하든 방 자체에는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中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아주 오래 전 엄마가 파란색 귀를 가진 말하는 로봇 개를 마트에서 사다줬었다. 학습능력이 없어 발전 가능성이 없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디지언트랑 비슷하겠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로봇 개가 걸어다니다가 소파에 부딪히거나 하면 마치 진짜 생물이 다친 것 처럼 걱정했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다마고치 부터 시작해 프린세스 메이커, 강아지 키우는 게임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가상 아바타에 애정을 쏟아왔다. 물론 우리의 현실에 존재하는 아바타들과는 달리 디지언트들은 소통할 수 있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며 "취향"이 생기기도 한다. 소설 말미에 주인공 애나는 자신의 디지언트 잭스에게 살아가는 법을 최선을 다해 가르치겠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 온 가상현실 아바타는 우리가 살아가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는가? 이미 주어진 세계관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우리의 고전 아바타들은 사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고 애초에 그들의 세계관 밖의 지식은 습득할 수 없다. 반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고도화된 디지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디지언트들은 묘하게도 더욱 사람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
"어쩌면 디지언트의 성숙의 기준은 인간만큼 높이 설정되어선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中
글을 읽을 때에는 디지언트=애완용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읽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애완을 넘어 사람아이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게 맞을 듯 하다. 애나가 잭스를 키운(?) 것 처럼 아주 오랜 시간 사람과 디지언트와의 교류가 지속된다면 당연히 애정은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살아있는 생물이 아닐지어도 나와 쌍방교류가 가능한 존재 아닌가. 내 폰의 시리와는 조금 다르다. 아직 우리의 시리는 우리가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하니까. 사람이 갑의 위치에서 디지언트를 보호하고 관리해야만 한다고 한다면 글쎄, 성장 과정에 물리적 제한을 두는 방법 밖에는 없지 않을까?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블랙미러에 거의 똑같은 주제의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모든 순간들이 영상으로 기록되고 필요시 언제든지 특정 순간을 검색하고 재생할 수 있는 세상. 원한다면 기억을 삭제하거나 편집하는 것까지 가능한 무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말 대로 현재 내 인간관계가 망각이라는 주춧돌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라면.. 현실을 알고싶지 않을 것이다.
사실적 진실과 감정적 진실. 기술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진실과 기록할 수 없는 나만의 진실, 그리고 가장 객관적인 진실과 가장 주관적인 진실이다. 사실여부가 불명확한 과거로 인해 현실의 내가 고통받고 있고 그 과거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면, 정말 간절히 과거를 기억함에 있어 효율을 찾아야한다면 (빠르고 정확하게 기억해야 한다면) 리멤이라는 기계는 꽤나 유용하게 사용될지도.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상대의 잘잘못을 따지고 기억의 오류를 자꾸 수정하려 하고 점점 감정적 진실의 존재가 무의미해진다면 이 세계에 낭만은 더 이상 없겠지. 초등학생 때 탄천에서 다슬기를 잡아 페트병에 담으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는 (물론 지금의 나도 그렇지만) 다슬기라는 미지의 존재가 너무 무서웠지만 지겨운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탄천으로 뛰어가 즐겁게 물 속에서 뛰어 노는 것이 그저 즐거웠었던 것 같다. 과연 당시의 내가 정말 진심으로 즐거워했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다슬기는 지금도 내게 위협적인 존재인데, 내가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뭐 어찌됐건 내가 즐거웠다고 기억하면 즐거웠던 것 아닐까? 지금의 내겐 20년도 더 된 낭만적인 기억이지만 리멤을 사용하게 되면 그저 다슬기따위에 벌벌 떨고 있는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좌절하게 될지도 모른다.
글을 배우게 된 지징가처럼 우리는 어쩌면 글을 써서 기록하는 종이기 때문에 사실적 진실에 더욱 집착할런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간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로봇이 되길 희망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글쓰기는 테크놀로지다.
따라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의 사고 과정에는 테크놀로지가 매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글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인지적 사이보그가 되며, 그 사실은 우리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中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평행우주의 나와 한정된 프리즘의 용량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카톡같이 문자만 주고 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고 있고 선택의 순간마다 새로운 나, 새로운 우주가 생성되어 무한히 분화해나간다는 이론이 평행우주론이며, 글에서는 프리즘으로 다른 선택을 한 평행우주의 나를 바라보며 결국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닐지 많은 사람들이 걱정에 사로잡혔다고 나온다. 그러나 작가는 각 갈래에서의 개인의 선택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있다고 서술하고, 창작 노트에서도 어떤 개인의 성격이 그가 지금까지 해온 선택들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라면, 그와 비슷하게 그 개인의 성격은 그가 여러 세계에서 해온 선택들에 의해 밝혀진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음, 그러면 평행우주의 나는 나지만 내가 아닌 것 아닐까?
"만약 당신이 이곳과는 다르게 행동한 평행세계들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은 당신이 아니에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中
데이나는 어릴적 비네사를 배신했던 자신의 행동 때문에 비네사가 옳지 못한 방향으로 성장했다고 믿으며 죄책감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글 마지막에 익명의 누군가가 보내준 영상들을 재생하고 배신하지 않고 비네사의 편을 들어준 평행세계의 자신의 모습을 보게된다. 그리고 비네사가 비행을 저지르게 된 것은 자신이 행동했던 그 '배신'의 순간때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왠지 안심이 될 것 같으면서도.. 프리즘으로 특정 선택을 한 평행우주의 나를 보기 전까지는 일련의 사건의 원인이 나인지 남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여전히 불안할 것 같다. 이쯤되서 제목을 다시 보았다. Anxiety Is the Dizziness of Freedom. 완전한 자유의지를 갖고 선택을 하게 될 때마다 우리는 불안해한다. 우리의 선택들이 미래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프리즘조차 없는 우리는 결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선택들이 모여 지금 바로 이 세계의 나를 만들고 있으니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가장 나다운 선택을 해야한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우주가 무한의 우주 중 최고의 우주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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