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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수드빈 - 차이콥스키 & 메트너 피아노 협주곡 1번들

애니스토리 2018. 1. 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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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수드빈(Yevgeny Sudbin)

그는 정말 차원이 다른 엄청난 피아니스트이다.. 굉장히 까탈스러운 테이스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써 짐머만 이외에는 피아니스트 극찬을 몹시 아끼는 나는 수드빈을 알게된 한달? 전부터 정말 매일매일 수드빈을 자랑하고(?) 매일매일 수드빈을 감상한다. 


그의 청아한 음색은 말로 이루 다 할 수 없을만큼 옥구슬 같은 소리..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연습해도 저런 소리는 쫓아가지 못한다. 개인의 성격, 인생, 감성, 모든 것이 묻어있는 음색은 타인이 어떻게 따라갈 수가 없는 부분인 것이다. 그는 이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에 파워까지 가졌다. 청량한 음색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생각했던 나의 오해는 러시아 로맨스로 가득한 이 앨범으로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처음 그를 만난건 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과 5번이 들어있는 벤스케와 함께한 앨범이다. 베토벤을 어찌 이리 포카리스*트같이 칠 수 있지? 하고 무한 반복 재생하게 한 바로 그 앨범.. 그 앨범도 물론 강추이다. 



바로 이것..! 


아무튼 다시 차이콥스키와 메트너 협주곡 앨범으로 돌아와서 .. 이 앨범을 재생하기 전 아주 약간 불안했다. 그에게 베토벤과 스카를라티는 너무나 찰떡일지 몰라도 차이콥스키와 메트너는 또 아닐 수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요즘 인기있는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은 굉장히 한정된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인기를 끌고있기 때문에 아주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차이콥스키에서의 그의 파워.... 그의 감수성... 방금 전에도 듣다가 소름이 돋아버렸다. 그 예쁜 소리로 이렇게 파워풀한 감성을 낼 수 있다니?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다. 정말 사이다같은 피아니스트. 터치도 너무나 깔끔하고 음악도 완벽한 이 남자... 깊이까지 있다. 이렇게 깔끔하게 차이콥스키를 치는 사람은 또 못봤다. 보통 중박만 쳐도 음악이 워낙 화려해서 어영부영 넘어가는 작품 중 하나인데, 수드빈은 닭뼈 발라먹듯이 음악을 하나하나 분해하여 재조립, 그리고 재완성시킨다. 이 남자, 그냥 아무 곡이나 던져줘도 잘 쳐낼 스타일이다.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부분 없고 섞이는 부분 없이 마치 악보를 보고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는 연주랄까? 그렇다고 딱딱한 연주냐- 그건 또 아니다. 아주아주 로맨틱하고 아주아주 감수성넘치고 아주아주 아름다운, 마치 천국의 음악같은 그의 음악세계, 정말 대박이다. 


그리고 메트너 피아노 협주곡 1번. 메트너라는 이름만 알지 음악은 잘 몰랐었는데, 이 음반을 접하게되고 지금까지 적어도 백번은 들은 듯 하다. 전형적인 러시아 정취 물씬 풍기는 러시아 낭만음악으로, 얼핏 들으면 라흐마니노프같기도 하다. 대체 이 협주곡은 왜 잘 연주되지 않을까? 라는 의문만 남긴채, 수드빈은 유유히 연주를 이어간다. 피아노 처음 배우는 아이가 한음한음 또박또박 치는 것 같은 상상이 드는 음색인데, 왜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음악적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지성적이지만 로맨틱한 연주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이성과 감성의 그 사이에서 보통 유령처럼 떠돌다가 흐지부지되는 연주가 대부분인데, 이 연주는 이성 100% 감성 100%로 듣는 이를 사로잡아버린다. 개인적으로는 마이너한 취향 탓에 차이콥스키보다 이 곡이 더 마음에 드는데, 두 곡 전부 얼마든지 감성적인 연주로 듣는 사람의 귀를 깔아뭉개버릴 수 있지만 그는 적절히 밀당한다. 여기서 빵빵 터진다면 저기선 간드러지게, 여기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저기선 숨조차 쉴 수 없게 나를 쥐락펴락해버린달까? 


수드빈의 연주는 곡마다 앨범마다 리뷰를 하는 것이 너무나 무의미 한 듯 하다. 그의 연주는 항상 한결같고 항상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항상 마음을 움직인다. 출근길에 무아지경으로 듣다보면 울컥 하기도 하는데 뭐... 비록 이 리뷰가 앨범 한장의 타이틀의 리뷰로 올라왔지만, 결론은 수드빈 찬양이다. 


짐머만 이후 내 인생 최고의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수드빈. 그가 한국에 온다고 한다..! 그것도 베토벤 5번을 들고.. 죽었다 깨나도 꼭 가봐야 할 공연이다. 실황에서는 청중을 어떻게 휘어잡는지 한 번 내 눈으로 내 몸으로 경험해 보고 싶다. 


+) 메트너 피아노 협주곡 1번의 3악장.. 음악이 폭탄터지듯이 터질때 내 마음도 같이 터진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꼭 한 번이라도 들어보길 추천..!